실리콘밸리 속도전: 혁신, 안전, 그리고 노동이라는 세 축
인공지능 개발, ‘마지막 구간’의 실체
인공지능 에이전트(AI agent)가 컴퓨터 환경, 특히 Windows 데스크탑과 웹 브라우저에서 실제로 유용하게 동작하려면 극복해야 할 기술적 장애물이 여전히 많다. 최근 창업 생태계에서 주목받은 Pig.dev와 Browser Use 사례는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Pig.dev는 한때 AI가 Windows 환경을 실제로 조작하도록 만드는 에이전트 기술로 주목받았지만, 창업자는 시장에서 실질적 수요를 확인하지 못하고 결국 시스템 캐시 개발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고객들은 “툴”이 아니라, 실제로 자동화된 결과물이 필요했다. 일회성 프로젝트를 원하는 수요자와, 장기적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창업자 사이에 간극이 있었던 셈이다. 결국 Pig.dev는 반복 작업을 AI가 재활용할 수 있게 캐싱하는 Muscle Mem 개발로 전략을 바꿨다.
반면 Browser Use 같은 경우는 브라우저의 버튼과 UI 구성 요소를 ‘텍스트처럼’ AI가 해석할 수 있는 마치 번역기 같은 역할을 하며 주목받았다. 이는 중국발 에이전트 도구 ‘Manus’가 바이럴을 타면서 더두드러졌다. 창업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컴퓨터 사용’이야말로 아직 채워지지 않은 AI 적용의 마지막 구간이라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동종 기술에 도전하는 스타트업 다수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올해 자사 Copilot Studio에 GUI 자동화 기능을 실험적으로 적용하며 이 영역의 주도권 다툼에 뛰어들었다. Windows 11에서 일반 사용자의 설정 조작을 돕는 AI 도구도 선보였다.
Pig.dev와 같은 소규모 스타트업 창업자는 대기업과 달리 실제 제품화, 고객 확보, 반복 수요 등 본질적인 문제에 더 직면한다. 개발자 도구냐, 엔터프라이즈 수주냐, 오픈 API냐 등 시장 진입 경로 자체가 창업 설계 방향을 근본적으로 뒤바꾼다. 기술적 과제만이 아니라, 사용자의 실제 요구와 시장의 수용성까지 반드시 맞물려야 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AI 경쟁의 속도, 그 이면의 노동
AI와 코드리뷰 자동화 영역은 속도와 효율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Greptile은 대규모 투자 유치 소식과 함께, 조직 내부의 극단적으로 높은 근무 강도가 대외에 알려졌다. 대표 창업자는 “업계에서 2등, 3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며,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주말까지 포함되는 강도 높은 근무를 사실상 조직 문화로 내세웠다. 빠른 성장과 투자 유치, 그리고 혁신적 제품 개발이라는 목표 하에 이른바 ‘극한 워크로드’가 한동안 용인되기도 한다.
이를 둘러싸고 논쟁은 분명히 있다. 한편으로, AI 코드리뷰 시장에서 구글, 페이스북 뿐 아니라 Graphite, Coderabbit 등 스타트업 간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만큼, 생존을 위해 ‘속도가 곧 생명’이라는 분위기도 확산된다. 경쟁 스타트업들 역시 대규모 투자와 빠른 기능 출시로 시장을 선도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극한의 노동력이 장기적으로 건강한 기업 문화, 창의성, 지속 가능한 혁신과 양립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은 지속해서 제기된다. 혁신이라는 명목 아래 노동 환경이 희생될 때, 단기적 성과 외에 장기적 부작용까지 심층적으로 조명하는 통찰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속도=혁신’의 뒷면: SpaceX와 스타베이스의 안전
속도와 혁신을 추구하는 스타트업 문화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사례 중 하나가 바로 SpaceX의 스타베이스다. 스타베이스는 초대형 우주발사체 ‘스타십’의 개발·제조 중심지로, 최근엔 독립 도시로까지 편입되어 그 상징성을 더했다.
하지만 2024년 기준 스타베이스의 직원 100명당 부상자는 연간 4.27명으로, 미국 우주제조업 평균인 0.7명(한국시간 6월 기준, 미 노동통계청 최근 연례보고)보다 거의 6배 높다. 2019년부터 안전기록 데이터를 공개한 이후 이격은 꾸준히 유지되었다. 이 지표(TRIR)는 30년 전 수준에 가까우며, 5년간의 실질적 개선도 미비하다. 손가락 일부 절단, 거대한 크레인 붕괴 등 심각한 사고도 포함돼 있다.
스타베이스의 이러한 기록은 스페이스X 전체 시설 평균 부상률(2.28명)이나 동종 경쟁 업체인 블루오리진, ULA(1.09~1.12명)보다도 지속적으로 높다. 전미안전보건청(OSHA) 역시 이 데이터를 공식 인정했다. 물론, 단순한 부상 통계로 현장의 ‘안전문화’ 전체를 판단하는 데 한계는 있다. 경미한 부상과 중상, 결근 여부 등 기록상의 한계와, 데이터가 실제 산업 구조와 얼마나 정확히 대응하는가에 대한 논쟁도 함께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스페이스X의 성과와 상징성 때문에 스타베이스의 안전 이슈는 종종 묻히거나 소홀히 다루어진 측면이 많다. 심지어 NASA는 대규모 투자와 임무 위탁에도 불구하고, 안전 지표가 ‘주요 위반사항’ 수준에 직접 해당하지 않으면 계약에서 즉각적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한편, ‘빠른 기술 혁신’을 명분으로 한 실리콘밸리식 속도전이 광범위한 작업 현장 전반으로 확산되면, 산업 안전의 사회적 책임 논의 또한 대두될 수밖에 없다. 현장의 근로자 안전, 지속 가능한 기술 개발, 그리고 사회 전체의 기대치가 서로 어떻게, 얼마나 접점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이 절실하다.
실리콘밸리의 세 축: 기술, 시장, 그리고 사람
최근 IT 혁신 현장을 보면, 단순 기술의 진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있다. 기술적 난제와 활용 현장의 괴리, 극단적 노동환경이 불러오는 조직의 긴장, 그리고 그 이면에 드리운 산업현장 안전 등의 이슈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윈도우, 브라우저, 코드리뷰, 초대형 우주선 등 모두 미래지향적 기술과 혁신이 작동하는 공간이지만, 이 안에서 실제 사업화, 경쟁, 그리고 인간 노동의 가치는 때로는 뚜렷하게 엇갈린다. 기술개발의 속도와 노동자 권리, 산업 안전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같은 궤도에서 조화롭게 달릴 수 있는지 질문은 살펴볼수록 깊어진다.
현재 실리콘밸리의 현실은 시장, 혁신, 노동의 세 요소가 어떻게 어긋나고, 또 충돌하며 한계를 넘어서는지 매우 풍부한 장면을 남기고 있다. 단순히 창업 성공 신화나 대기업 혁신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풍경을 세심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