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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바꾼 유리의 역사

생활을 바꾼 유리의 역사

유리, 일상 속 투명한 혁신

유리는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창문, 휴대폰 화면, 안경, 자동차 앞유리 등 하루에도 수십 번 넘게 접하게 된다. 투명하고 단단한 이 물질은, 사실 인류 문명에 크고 작은 변혁을 불러온 존재다. 유리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기술의 전환점과 과학의 진보, 그리고 생활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가 드러난다.

최초의 유리, 고대의 비밀

유리는 천연상태로도 간혹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화산 폭발 시 발생할 수 있는 흑요석(Obsidian)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쓰는 인공 유리는 약 4,000여 년 전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에서 제작되기 시작했다. 초기의 유리는 주로 구슬, 암포라 같은 장식품으로 사용됐다. 그 당시의 유리는 현대처럼 맑고 투명하지 않고, 불순물이 많이 섞여 탁한 빛을 띠었다.

BC 1세기경, 시리아 지역에서 일어난 결정적인 기술혁신이 바로 ‘유리 불기(Glass-blowing)’였다. 이는 관 모양의 도구로 녹인 유리를 불어서 다양한 형태를 만드는 방법이다. 이 기술 덕분에 유리는 빠르게 생산량이 늘었으며, 그 용도 역시 제한에서 벗어나게 된다.

중세, 알레르망의 징검다리

유럽 중세 시기, 유리는 교회 건축과 함께 또 한 번 도약한다. 스테인드글라스와 같은 색유리는 고딕 건축의 대표 요소가 되었고, 이는 종교적·예술적 표현의 폭을 넓혔다. 베네치아의 무라노섬 장인들은 고도의 기술과 노하우를 활용해 유리 제조를 혁신적으로 발전시켰다. 특히 15세기에 등장한 ‘크리스탈 유리’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투명한 유리의 시초다.

이 시기 유럽 왕실과 부유층은 유리잔, 유리 장식품 등을 통해 신분과 부를 과시했다. 제조법은 극비리에 공유되었으며, 숙련된 장인들은 국가적 자산으로 취급받았다. 앞서 언급한 무라노섬의 장인들은 섬 밖으로 나가는 게 법적으로 금지될 정도였다.

유리가 가져온 과학의 도약

과학사에서 유리는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발휘한다. 17세기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소형 유리렌즈를 이용해 천체망원경을 만들면서 인류의 시야는 지구 밖으로 넓어졌다. 현미경 역시 유리 없이는 불가능하다. 송곳같이 날카롭게 갈아 만든 렌즈를 통과한 빛은, 미생물의 세계를 처음으로 드러냈다. 새로운 생명과 우주의 이치를 발견하는 데 유리는 핵심 매개체가 됐다.

이렇듯 유리는 단순히 생활용품을 만드는 재료를 넘어서, 지식의 수평선을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유리의 산업혁명, 판유리의 시대

19세기 산업혁명과 함께 유리 제조 역시 기계화의 길을 걷게 된다. 고열에 견디는 대형 가마와 롤러로 넓은 판유리를 생산하게 되자, 창문부터 쇼윈도, 건축 외벽까지 유리의 수요가 폭증했다. 대량생산 방식인 플로트법(float process)은 1959년 영국의 앨라스터 필킨턴(Alastair Pilkington)에 의해 완성됐다. 이는 오늘날의 대형 유리창, 자동차 유리, 고층빌딩의 커튼월 건축까지 이어진다.

판유리와 미세하게 가공된 강화유리는, 이후 철도, 비행기, 선박 등 다양한 교통수단에 적용되어 안전과 효율을 모두 높였다.

전자기기와 디지털 시대 유리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유리는 뗄 수 없는 관계다. 광섬유(Fiber Optics)는 머리카락보다 가는 유리 실에 빛 신호를 주고받아 인터넷 네트워크를 실현했다. 1970년대 말에는 일본에서 터치스크린 유리가 태동했고, 21세기 들어 특수 코팅과 첨단 내구성의 강화유리(예: 고릴라글래스)가 등장하면서 스마트폰, 태블릿, 디스플레이 패널 같은 혁신적 제품이 탄생했다.

또한, 특수 정밀 유리는 반도체, 태양광 패널, 레이저 기기까지 적용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유리는 광학, 에너지, 정보 분야의 핵심 소재가 되었다.

유리의 과학적 성질

유리는 고체일까, 액체일까? 한때 유리는 ‘아주 천천히 흐르는 액체’라는 오해가 퍼진 적이 있다. 실제로 유리는 비정질 고체, 즉 결정 구조를 이루지 않은 고체 상태다. 유리글라스 전이온도(일종의 경계 온도) 아래에서는 유동성이 거의 없으며, 일반적인 시간척도에서는 분자들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오래된 교회 창문 하단이 두꺼워 보이는 현상도 단순한 제작 기술의 한계 때문이지, 유리가 흘러내렸기 때문이 아니다.

유리는 주로 석회석, 소다(탄산나트륨), 실리카(이산화규소)로 만든다. 극도의 고온에서 이 원료들을 녹인 뒤 수냉·성형해 만든다. 첨가제(붕사∙납∙마그네슘 등)를 더하면 내화성, 투명도, 색상 등 특성을 달리할 수 있다.

유리의 환경 영향과 재활용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시대를 거치며 유리 폐기물도 대두되는 문제다. 유리는 화학적으로 안정적이기 때문에 분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녹이거나 분쇄해 새로운 용기로 다시 제조할 수 있고, 깨진 유리는 건설자재로도 활용된다. 재활용 유리(컬릿 cullet)를 원료로 쓰면 에너지도 절약된다. 2022년 기준 유럽연합의 유리병 평균 재활용률은 약 76%에 이른다.

다만 유리의 불량 분리수거와 오염문제, 운반과정의 에너지 소모 등은 여전히 개선을 필요로 한다.

다양한 유리의 쓰임새와 미래

유리는 첨단 산업과 예술, 기술, 생활 모두에 융합되어 있다. 빛의 굴절률을 조절하는 광학유리, 방사능을 차단하는 납유리, 열과 화학성에 강한 내열유리(Pyrex), 높은 투명도의 무철 유리(Ultra-clear Glass) 등 수십 가지 종류의 특수 유리가 있다.

최근에는 유연한 유리(flexible glass), 자기치유 유리(self-healing glass), 투명태양전지 등 미래형 소재가 연구되고 있다. 건축에서는 단열 성능과 에너지 효율성을 높인 스마트글라스와, 자동차산업에서는 사고 시 파편이 튀지 않도록 설계된 적층 유리가 확대 활용되고 있다.

햇살이 비치는 유리창을 통해 바라본 어느 도심 거실 풍경

투명함 너머의 가능성

유리는 누구나 투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내면에는 인류 문명과 과학, 기술을 이끌어 온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생활을 조용히 혁신한 주역, 유리. 앞으로의 세상에서 또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지 두 눈으로 지켜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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