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대륙: 남극은 어떻게 비밀을 품고 있는가
남극, 땅의 끝에서 시작된 이야기
지구의 가장 남쪽 끝, 남극 대륙은 누군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영역이다. 해발 2,000미터가 넘는 두꺼운 얼음과 영하 89도의 기록적인 추위. 그곳에는 몇 천만 년 동안 인류의 접근이 거의 닿지 않은 원시적인 환경이 남아 있다. 오늘날 남극이 ‘얼음의 땅’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곳은 오랜 지질학적 시간 동안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그리고 그 변화의 흔적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공룡이 걸었던 남극, 그리고 식물이 번성하던 시절
남극은 항상 눈과 얼음에 뒤덮여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약 1억 년 전, 남극은 고요한 열대림이 드리웠던 땅이었다. 중생대 백악기 무렵, 이 대륙은 남위 60~70도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기후는 오늘날보다 훨씬 온화했다. 화석연구를 통해 고대 양치식물과 침엽수가 넓게 분포했음이 밝혀졌다. 당시 남극에는 거대한 공룡도 살았다. 파충류의 잔해와 은폐막에 감싸인 고대 나무의 화석이 남극의 땅속에 잠들어 있다.
20세기 초 영국의 로버트 스콧 탐험대가 얼음 아래 수십 미터 깊이에서 발견한 고대 식물 화석은, 이곳이 오랜 시간 초록의 생명으로 가득했음을 보여준다. 유럽과 남극이 맞붙어 있던 곤드와나 시대의 흔적은 남극이 세계 대륙과 어떻게 떨어져 나갔는지, 그리고 기후가 어떻게 변했는지 단서가 된다.
얼음 아래 숨겨진 또 다른 세상
오늘날 남극 대륙을 덮은 얼음층은 평균 두께가 2,160미터에 이른다. 얼음 아래에는 산맥, 협곡, 거대한 호수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보스토크 호수’다. 이 호수는 약 4,000미터 두께의 얼음 아래에 감춰져 있으며, 넓이는 서울의 160배(약 1만 4천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호수 온도는 영하 3도 정도로 유지되지만, 얼지 않는 점이 특이하다. 남극의 지하에는 아직 이해되지 않은 열원과 미생물이 있다.
최근에는 보스토크 호수처럼 얼음 속의 호수에서 미생물 DNA가 발견되었다. 이는 극한 환경에서 생명이 어떻게 살아남는지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다른 환경과 단절된 생명체가 어떻게 독자적으로 진화했는지 연구하는 데 남극이 유용한 실험실 역할을 한다.
남극의 얼음, 지구 역사의 기록
남극 대륙의 얼음은 단순한 얼음 덩어리가 아니다. 이곳의 얼음은 약 80만 년 동안 쌓인 것이다. 얼음 속 기포에는 고대 대기 중 이산화탄소와 산소가 보존되어 있다. 과학자들은 이 얼음코어(ice core)를 통해 과거의 기후 변화를 추적한다. 남극 얼음은 주요한 자연 기록보관소로,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지구 온도, 대기 성분, 해수면 변화를 시간대로 재구성할 수 있다.
극한의 생존, 극지 연구기지
남극에서 사람이 생활을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 남극에는 30여 개국이 운영하는 70여 개의 연구기지가 있다. 이들은 극심한 추위, 강풍, 극야를 견디면서 얼음과 바람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연구를 이어간다. 국내 세종기지, 장보고기지의 연구원들도 해마다 남극 여름과 겨울을 넘기며 대기, 빙하, 생물 등을 관측한다.
남극은 1959년 남극조약에 따라 군사적 이용이나 상업적 개발, 영토 분할이 금지된 땅이다. 오직 평화적인 과학 연구만 가능하다. 국제 협력이 활발한 곳이기도 하다. 남극조약은 환경보호와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서의 남극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맹렬한 바람과 특별한 날씨, 남극만의 환경
남극은 바람이 가장 거센 장소 중 하나다. 특히 ‘카타바틱 바람’은 남극 대륙 내부에서 해안 쪽으로 점점 빨라진다. 풍속이 시속 300km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바람은 대륙의 온도와 얼음 구조에 영향을 준다. 남극의 연평균 기온은 영하 57도 수준이며,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으로 분류된다.
이곳에는 사계절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반년 이상 해가 뜨지 않고, 해가 지지 않는 극야와 극주 현상이 반복된다. 1983년에 기록된 영하 89.2도의 온도는 세계 최저 기온으로 남아 있다.
빙하의 이동, 지구온난화의 신호
전 세계적으로 빙하가 빠르게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남극의 빙상은 현재 지구 해수면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위성 관측 자료(2023년 NASA 발표 기준)에 따르면 남극 빙상이 줄어드는 속도는 연간 약 1500억 톤이 넘는다. 이 속도가 더 빨라지면, 수 세기 전보다 더 많은 해수면 상승이 예측된다.
얼음이 녹으면서 남극 대륙의 지형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얼음 밑에는 과거의 산맥, 호수, 강줄기가 드러나고 있으며, 숨겨진 미생물과 과거 생태계 연구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남극과 우주의 연결고리
남극은 우주 관측의 최적지로 꼽힌다. 지구에서 가장 깨끗하고 건조한 대기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 중 수분이 거의 없어 크고 작은 망원경, 기상 관측기기가 설치되어 있다. 특히 남극점 인근의 아문센-스콧 기지에서는 우주배경복사 신호, 우주선, 중력파까지 관측하고 있다.
또한, NASA의 ‘아이스브릿지(ICEBRIDGE)’ 프로젝트처럼 항공기를 활용해 남극맥과 빙하의 변화를 측정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남극의 연구는 곧 지구와 우주의 진화, 생명체의 기원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결론 없는 대륙, 탐사가 계속되는 이유
남극은 아직도 많은 비밀을 간직한 곳이다. 화석 한 점, 얼음 속의 미생물, 기상 관측 자료 하나하나가 지구의 긴 역사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건네주는지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멈추지 않는다. 인류는 앞으로도 남극을 파헤치겠지만, 그 비밀이 모두 밝혀질 날은 쉽사리 오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은 그 자체로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 그리고 자연의 신비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