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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윤리, 그리고 평범한 일상의 경계

기술, 윤리, 그리고 평범한 일상의 경계

이면의 기술: 혁신, 경쟁, 그리고 갈등의 현장

최근 기술 산업에서는 극적인 라이벌전과 윤리적 문제, 형식과 내용 모두에 영향을 주는 새로운 변수들이 곳곳에서 부상하고 있다. 생산성, 혁신, 편의성 아래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변화는 단순하지 않다. 경쟁에 관한 이야기도, 인공지능 활용에 대한 논쟁도, 그리고 창작과 일상 속에서 기술이 인간과 부딪히는 모습도 모두 각자의 맥락과 함의를 가진다. 주요 사례를 통해 이 복잡한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두 스타트업의 첩보전: 데이터, 경쟁, 그리고 불신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 HR 테크 기업 립플링(Rippling)과 딜(Deel)은 몇 년 동안 시장 점유율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 왔다. 이들의 경쟁은 사업, 제품, 마케팅을 넘어선다. 최근에는 서로를 ‘스파이’로 지목하는 법정 공방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인물인 키스 오브라이언(Keith O’Brien)은 딜을 위해 립플링의 내부 정보를 빼냈다고 자백했다. 월 5,000유로를 받고 협력사이자 경쟁사가 된 립플링의 고객·제품·운영 데이터 등을 넘긴 정황도 드러났다. 립플링은 내부 보안 시스템으로 ‘함정’ 슬랙(Slack) 채널을 만들어 그를 적발했고, 오브라이언은 증거인 휴대폰을 변기 등에 숨기기까지 했다.

이후 법정에선 더욱 특이한 상황이 벌어졌다. 오브라이언은 최근 자신과 가족이 괴한들에게 감시당한다는 이유로 접근금지명령까지 신청했다. 회색 차량, 검은 SUV가 뒤를 밟거나 집을 관찰하는 일이 반복되어 심리적 불안이 커졌다고 진술했다. 립플링 측은 그를 증인으로 내세우며 사실상 보호자 역할도 겸하고 있다. 동시에 딜은 자신들 역시 립플링 직원에게서 동일한 스파이 행위를 당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사 간 소송전은 단순한 법적 우위 다툼 그 이상이다.

첨단 스타트업 간 정보 유출·보안·윤리 문제가 실제 첩보전 형태로 구현되는 드문 사례다. 판사의 “1970년대 경찰·범죄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는 농담은 상황의 심각성과 동시에 현실의 기묘함을 보여준다. 개인정보 보호, 기업 경쟁 윤리, 그리고 기술산업 내 법적·심리적 압박 구조가 어떻게 엮이는지 생각할 단초를 던진다.


인공지능과 창작자의 경계: 폴 포프의 귀환과 현실적 불안

한편, 만화가 폴 포프(Paul Pope)는 본인의 작업과 경력을 되짚는 개인전을 뉴욕에서 열고 있다. 21세기 미국 코믹스의 대표 창작자인 포프는 전통적 아날로그 방식(붓과 잉크)에 충실한 작가다. 그가 오랜 공백 끝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서, 만화 업계 내부의 불안도 다시 조명된다.

최근 포프를 포함한 여러 만화가는 인공지능으로 인한 창작 환경 변화, 저작권 논란, 직업 자체의 위협 등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AI가 기성 작가의 스타일을 모방해 이미지를 만들거나, 대량의 데이터를 무단 학습해 상업적 결과물을 내는 상황에 업계는 불신과 우려를 표한다. 포프는 “AI가 내 그림체와 유사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도, 본질적 감정과 개성, 창작의 뿌리는 복제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 한편에서는 AI가 연구, 자료 수집 등에서 유용할 수 있고, ‘도구’로 적절히 활용할 필요도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AI 시대에 창작자의 가치는 자체 예술성·인격성·경험에 뿌리를 둘 것인지, 아니면 ‘스타일’이 대체 가능한 상품이 되는지 갈림길에 놓인다. AI의 급속한 도입과 보편화 속에서 산업 모델, 저작권 체계, 예술의 사회적 의미가 모두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창문을 바라보는 만화가, 배경에는 구불구불한 잉크와 디지털 픽셀이 흐른다


AI의 그림자: 도구인가, 피할 수 없는 변화인가

폴 포프의 사례와 더불어, 인터뷰와 수많은 논평에서 등장하는 테마는 ‘AI와 창작의 경계’다. AI는 빠르고 편리하며, 개개인의 생산성을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문제, 예컨대 창작자의 훈련 과정을 단축하거나, ‘전통’ 기반 역량이 평가절하될 위험도 따른다.

특히 포프는 ‘1000번의 붓 그림이 끝나야 진짜 실력이 생긴다’는 고전적 예술가의 조언과, 손끝·관절의 미묘한 노동이 축적된 인간 창작의 깊이를 강조한다. 앱 하나, 태블릿 한 대로 스타일은 쉽게 흉내낼 수 있어도, 창작자의 정체성과 경험 전체는 따라잡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편 AI를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개인 비서’로 인식하며, 그 효용성·오류 가능성 모두를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앞으로의 관건은 AI의 대체성보다는, 인간 고유의 ‘기여’가 어떤 영역까지 남게 되는지다. 소재의 독창성, 새로운 장르의 창출, 사회적 감정의 표현 등은 인간만이 가능한가, 아니면 ‘창의성’마저 패턴화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던진다.


기술이 일상에 스며드는 방식: Cluely와 윤리적 회색지대

한편, 기술 악용의 가장 최신 사례로 ‘클룰리(Cluely)’라는 스타트업의 등장은 흥미롭다. 클룰리는 사용자가 취업 면접, 시험, 세일즈 미팅 중에 몰래 AI의 도움을 받아 실시간 답변·조언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서비스를 이끄는 대표와 공동 창업자는 예일에서 개발한 ‘인터뷰 코더’ 툴로 인해 정학 처분까지 받았던 21세 청년들이다.

클룰리는 창업 후 짧은 기간 안에 거액의 투자를 유치했고, 소셜미디어상 논란적 자기 홍보로 화제를 모았다. 데이트 자리에서 나이와 취미를 AI로 꾸미는 영상 등은 편의성의 상징이자, 일상적 신뢰 체계의 균열을 암시한다.

이러한 기술은 즉각적인 성취 혹은 편의만을 보장하지 않는다. 사용자와 타인 모두의 신뢰, 공정성, 심지어 안전까지 연관된 윤리적 논란이 잠재한다. AI가 인간을 보조할 수 있다는 점과, 인간의 ‘정체성’을 과감하게 에이전트에게 위임한다는 점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이 간극이 언제, 어떻게, 어느 선까지 허용되는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은 아직 모호하다.


여러 층위에서 드러나는 기술의 윤리 그리고 사회적 맥락

세 사례는 외양적으로는 각기 다르지만, 공통의 질문을 가진다. 기술은 어디까지 인간의 성취를 돕고, 어디서부터 인간의 역할과 가치를 잠식하는가? 경쟁과 효율, 창작과 도구, 신뢰와 검증 등 모든 영역에서 AI를 둘러싼 논의가 단순히 도입 여부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HR 테크 스타트업 간의 ‘스파이’ 논란은 기술과 정보의 경계, 그리고 감정·불안까지 기업 내외부에 영향을 미친다. 창작의 영역에서는 인간 고유의 경험과 감정, 그리고 훈련의 가치가 AI에 의해 어떻게 변형될지 불확실성이 커졌다. 일상 업무·생활에서는 AI가 언제 어디서든 편의를 제공해 주지만, 동시에 신뢰의 토양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기술의 도입은 더는 중립적 선택지가 아니다. 실제 삶, 경쟁, 사회 윤리와 긴밀하게 엮여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각 영역별로 ‘기대와 현실’, ‘필요와 위험’, 그리고 ‘인간과 기계’ 사이의 실질적 경계를 어떻게 재정의하고, 그 기준을 누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로 옮겨진다. 기업, 예술, 일상 모두에서 이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 중요한 이슈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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