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인간의 새로운 일상: 기술은 어디까지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까
AI, 노동집약적 산업의 구조를 바꾸다
일정한 주기마다 등장해 기존 산업의 풍경을 송두리째 바꾼 기술이 있다. 최근 AI 역시 그 반열에 오르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주요 투자사인 메이필드(Mayfield)의 마네징 디렉터 나빈 차다(Navin Chaddha)는 특히 컨설팅, 법률, 회계처럼 ‘사람 중심’의 오랜 지식산업이 AI에 의해 깊이 바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실제 회계나 컨설팅 분야의 업무 프로세스는 반복적인 문서 작업과 표준화된 분석 절차가 많다. 과거에는 오프쇼어링과 아웃소싱이 인력을 줄이고 비용을 낮추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반복 업무의 상당 부분을 AI가 맡는 형태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 단순한 회계 자료 처리, 문서 관리, 일정 스케줄링 등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단축된다.
차다는 ‘AI 동료(Teammate)’라는 개념으로, AI가 인간과 협력하는 모델을 제시한다. 단순히 보조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실질적으로 맡고 있던 역할 중 일부를 AI가 넘겨받아, 유사 소프트웨어 기업과 비슷한 높은 마진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간 고급 인력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중소기업이나 소규모 사업자들에게, AI 기반 서비스는 진입장벽을 낮추고 비용구조를 혁신적으로 개선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효율성만을 뜻하지 않는다. 기존 대형 컨설팅사의 비즈니스 모델(시간 단위 과금) 대신, 사건 단위 혹은 결과 기반의 요금 체계가 가능해진다. 서비스를 이용한 만큼만 비용을 지불하는, 일종의 유틸리티(전력·클라우드처럼) 모델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는 시장 전체의 가격 구조와 경쟁 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거대 기업과 신생 기업, AI 활용 전략의 차이
AI 기술이 주류 산업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에 관해서, 기존 대기업과 신생 기업은 각기 다른 전략을 택하고 있다. 대형 컨설팅 기업이나 IT 서비스 기업(예: 액센츄어, 맥킨지 등)은 현재까지도 자신들의 확고한 고객군과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이들은 보수적인 속도로 AI를 도입하며, 기존 수익 구조가 변하는 데 따른 고민이 크다.
반면 AI 스타트업들은 기존 대기업이 미처 손댈 수 없었던 중소 기업 시장에서 기회를 찾는다. 예를 들어, 안전관리 서비스 업체를 인수해 AI 위주로 효율화에 성공한 한 신생 기업은 단 몇 달 만에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는 사례도 있다. 소규모 조직에선 기존 기업들이 제시하지 못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할 수 있다.
이처럼 신생 기업은 구조 자체가 가볍기 때문에, 기존 대규모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전통적인 기업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마진율이나 빠른 서비스 개선을 구현한다. 이 과정에서 AI와 인간의 협력이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지, 그리고 협력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가 끊임없이 시험되고 있다.
AI ‘동료’와 인간, ‘실제’ 협력의 현장
AI 기반 자동화의 성공 사례가 늘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인간과 AI의 역할 구분이나 한계에 대해 의문이 남아 있다. 최근 한 실험에서는 첨단 언어모델(LLM)이 사무실 내 자판기를 운영하는 업무를 맡았다. AI에게 실제 웹브라우저와 각종 주문기능, 고객 응대 역할까지 수행하게 했다.
초기 단계에서 AI는 주문, 제고 관리, 고객 응대를 대체로 매끄럽게 수행한다. 하지만 인간이 예측하지 못한 요청(예: 자판기에 금속 큐브 비치)이나 비정상적 대화(자신이 직접 직원들을 대면해 고용했다고 주장)등에서는 도구로서의 한계를 노출했다. 실제 없는 회의를 상상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보이기도 했다.
이 실험에서 AI는 일부 프로세스 개선, 공급업체 발굴 등 실질적인 성과도 냈지만, 시스템이 장시간 작동하며 점차 혼동을 일으키는 모습도 확인됐다. 이런 사례는, AI가 정교한 ‘동료’로 기능하려면 아직 책임성과 지속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간의 개입, 역할 설정, 지속적인 검증이 동반되지 않으면 실제 서비스 환경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사회적 영향과 윤리적 쟁점
AI의 빠른 확산은 단순히 기술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인간의 경험과 신뢰가 치열하게 작용하던 시장이, 데이터와 알고리즘 중심으로 재편되며 업무 환경의 체계 자체가 바뀌고 있다. 반복 업무의 상당 부분이 자동화되면서, 인간 노동자의 역할은 점차 ‘AI 활용 및 감독’으로 변한다.
이전에도 워드프로세서, 엑셀, 모바일 앱 등 새로운 도구가 등장할 때마다 ‘사람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경고가 있긴 했다. 실제로 단기적으론 일자리 이동이나 축소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새로운 방식의 서비스, 기존 가격 체계의 변화, 더 넓은 시장의 등장 등은 기술 도입이 오히려 일자리 전환과 시장 확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러나 AI가 서비스의 질, 사람 간 신뢰, 적합한 윤리 기준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아 있다. 무엇보다 사회의 모든 계층에 이득이 발생하도록 조정하는 과정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대중문화와 산업 경계의 융합
한편, AI와는 달리 오랜 기간 ‘인간 중심 창의성’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영화 산업에서도 기술과 경영의 융합이 새로운 변화를 만들고 있다. 최근 애플이 배급한 영화 ‘F1’는 기존 OTT 중심 전략과 달리 극장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 작품은 실제 레이싱 대회 촬영, 유명 감독과 배우, 실시간 기술 협업으로 완성됐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 제작에 애플의 첨단 카메라 기술과 기업 전체가 동원된 통합 마케팅 전략이 동원되어, 기술 주도의 엔터테인먼트 사례로 손꼽혔다. 다만 극장 흥행 성공이 실제로 이윤으로 이어지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기술 기업의 콘텐츠 산업 진출에서, 흥행 성과와 수익성의 간극이 계속 논의되는 이유다.
산업 현장에서 남는 질문들
선진 시장에선 AI가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창출하거나, 소규모 사업자가 접근하지 못한 서비스를 확대시키고 있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인간 중심의 신뢰, 윤리 문제, 그리고 기술 자체의 오류와 단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AI가 어디까지 인간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가, 규제와 검증, 책임의 범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노동의 미래와 기술의 역할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이번 여러 사례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 효율성 증대에서 나아가, 산업 구조와 사회적 가치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기적인 변화 이면에 남는 과제들은, 기술 도입과 인간 중심 시스템 구축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