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2차전지, 바람타는 ETF, 뜻밖의 불닭 신화
2차전지 업계의 구조적 위기: LG에너지솔루션을 중심으로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 후 처음으로 공모가 이하로 떨어진 날, 주가 차트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단순한 기업 이슈를 넘어선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불황의 신호는 여러 군데서 동시에 나타났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둔화되고 있고, 핵심 정책 지원책이 불확실해지며 투자 심리도 급격히 식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상징성이 컸던 만큼, 실제 이 회사의 2024년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8%나 급감했다.
배터리 산업에 남아 있던 기대감의 현실적 근거 중 하나였던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세액 공제(AMPC)도 이제 신뢰할 수 없는 카드가 됐다. 2023~2024년에만 2조원에 이르는 세액공제를 받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면 영업적자가 눈앞이었다. 최근 미국 의회에서 앞으로 전기차 세액공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려는 움직임까지 더해지면서 미래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LG에너지솔루션 경영진은 “신규 공장 확장 속도를 조절하고 필수 투자 부분만 진행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업계 전체가 ‘공격 성장’에서 ‘방어’로 전환 중임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설비투자 축소와 유상증자 행렬 등 구조조정의 움직임도 빠르게 번지고 있다. 삼성SDI, 포스코퓨처엠, SK온 등 주요 2차전지 업체들의 잇단 증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산업의 성장 논리가 급격히 흔들릴 때, 투자자와 자금은 민감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전기차 시장의 장기 성장성에는 이견이 적지만, 단기적으로는 구조 전환과 정책 변화, 자금 조달 환경이라는 복합적 변수들이 동시에 미치는 영향을 체감 중이다. 한국 2차전지 산업의 위기감이 빠르게 고조되고 있는 이유다.
ETF 쏠림과 양면성: 성장과 그림자
최근 국내 ETF(상장지수펀드) 시장이 2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는 소식은 증시에 참여하는 대중의 변화된 투자 습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주식과 펀드의 장점을 결합한 ETF는 낮은 수수료, 매매의 편리함, 그리고 다양한 투자처라는 강점을 앞세워 국민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최근 5년간 해외 주식형 ETF에만 37조원이 넘는 금액이 유입됐다. 연금자산을 ETF로 운영하거나, 손쉽게 미국 기술주와 신흥국, 방산, 테크, 인도 등 다양한 테마에 베팅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대표적으로 ‘KODEX 미국서학개미’ ETF처럼 특정 국가·종목에 집중하는 형태도 수익률 경쟁을 이끌었다. 월배당형 등 자산배분 신상품도 투자자 풀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장밋빛 흐름과 별개로, 그림자도 분명히 짙어지는 중이다. 단기 레버리지·인버스형과 같은 파생 ETF가 대거 출시되면서 투자 구조가 복잡해졌다. 지나친 룰 기반 단타 투자를 유도하거나, ‘좀비 ETF’라고 불리는 낮은 거래량과 자산을 가진 상품이 속출해 상장폐지 위기마저 빈번해졌다. 2차전지나 메타버스, 신산업 등 ‘유행 테마’의 남발이 이런 현상을 가속시킨다.
ETF는 투자 대중화의 이면에 높은 구조적 리스크도 함께 내재한다. 즉각적 매매의 편의성은 시장 변동성 앞에서 투자자 위험을 빠르게 증폭시킬 수 있다. 국내 ETF 시장은 규모 성장은 물론, 내구력과 상품 구조,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중요한 과제와 함께 성장 궤도에 올라섰다고 볼 수 있다.
금리 인하와 주택담보대출, 은행의 과부하
또 하나의 뚜렷한 변화는 시중은행의 대출 정책에서 감지된다. KB국민은행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3.56%까지 낮췄는데, 예상을 넘는 신청이 몰려 비대면 대출 접수를 하루 150건으로 제한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다시 말해, 금리 인하 경쟁이 예금·대출 시장에서 실제 소비자 행동을 파격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여타 시중은행들도 비슷한 금리대의 상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각종 우대 조건을 공략해야 낮은 금리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반해 KB국민은행은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고 간편한 비대면 상품을 내놨다. 현재 심사가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신청이 쏟아지고, 밀린 접수 건수가 2,000건을 넘어서 하루 접수 제한이라는 물리적 조치를 해야 했다.
이 현상은 단순히 한 은행의 상품 경쟁을 넘어, 주택 시장과 금융 소비자 환경, 디지털 뱅킹의 확산, 그리고 이자 비용에 극도로 민감한 현실 경제 분위기를 반영한다. 앞서 언급한 ETF나 2차전지 산업과는 전혀 다른 결의 ‘생활 밀착형 구조 변화’라 할 수 있다.
삼양식품과 ‘불닭볶음면’의 독주, 가치평가의 재정의
한편, 식품 산업의 한켠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도 목격된다. 삼양식품이 전년 동기 대비 67% 급증한 1분기 영업이익(1,340억원)을 기록하면서 주요 증권사들이 1억원대였던 목표주가를 1.5~1.7억원까지 잇달아 상향 조정했다. 영업이익률도 25%가 넘는다.
무엇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 매출 비중이 커졌다. 단발성 인기를 넘어, 공급량을 감당하지 못해 내수 물량을 수출로 돌려야 할 정도로 ‘초과 수요’가 지속되고 있다. 밀양 신공장이 하반기에 본격 가동되면, 생산능력 확대와 함께 수익성 개선까지 기대되는 구조다. 관세 등 통상 리스크도 있지만, 실제 실적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브랜드 파워가 단순 원자재 비용·가격 민감도를 압도한다는 것이다.
투자 은행 보고서에서 “과소평가했다, 미안하다”는 제목의 종목 분석이 나올 정도로 증권가에서조차 더 이상의 단순 식료품 기업이 아니란 인식이 자리잡았다. 한류문화나 식품산업 다각화, 품목·주가 동반 성장이라는 이례적 공식이 실질적 리턴으로 나타난 것이다.
산업과 투자, 생활의 줄다리기
오늘날 한국 경제 주요 뉴스에 드러나는 흐름은 각기 다른 산업군이지만, 거시적으론 돈의 흐름과 가변적 투자 환경, 소비자 행동 변화가 얽혀 있다.
2차전지처럼 대외 환경과 정책 변화에 크게 휘둘리는 중공업, 금융상품·디지털화 기반의 ETF 시장, 소비자 몸에 직접 와닿는 대출 시장, 브랜드와 오퍼레이션 전략이 극대화된 식품 산업까지. 서로 동떨어져 보이지만, 자금의 움직임, 정책 변화, 글로벌 의존도 등으로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궁극적으로는 투자와 생산, 소비가 각각 고유의 리듬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제도와 정책, 기업 경영 전략, 개별 투자자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무게추는 빠르게 이동한다. 산업별 리스크 관리는 물론, 개별 투자와 거래, 소비에서 어떤 기준과 원칙이 필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