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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로봇, 자본: 기술과 산업의 교차로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움직임

AI, 로봇, 자본: 기술과 산업의 교차로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움직임

거대 자본과 기술, 변곡점에 선 기업들의 선택

기술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뚜렷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최근의 움직임은 그동안의 성장 공식과는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기존의 투자 방식, 기술의 상업화 방향, 산업 간 협력이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스타트업이나 테크 기업들이 돈과 기술, 인력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회사의 가치와 시장 지형 자체가 바뀌는 양상이 눈에 띈다. 일부 기업은 내부 자본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자금 조달 방식을 바꾸고, 또 다른 기업들은 기존의 경쟁자를 사업적 협력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과감한 선택을 하고 있다.

기존 벤처 투자와 다른 경로: 그램머리의 선택

그램머리(Grammarly)는 14년 된 AI 글쓰기 도구 스타트업이다. 최근 미국의 투자사 제너럴 캐털리스트(General Catalyst)로부터 1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자본을 확보했다. 이 자금은 전통적인 벤처 투자라기보다는 미래 수익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REV-Share(수익 연동)’ 방식이다. 제너럴 캐털리스트의 CVF(Customer Value Fund)가 자금을 제공하지만 주식을 요구하진 않는다. 대신 그램머리는 일정 기간 수익의 일부로 투자금을 상환한다.

이 방식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2021년 제로금리 정책(ZIRP) 시대에 130억 달러로 평가받았던 그램머리는 이후 시장 변동성과 금리 인상, 기술 기업 실적 둔화 등으로 기업 가치가 낮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밸류에이션에 대한 공식 언급은 없지만, 현재 시장에서 기업이 기존 주식 가치의 희석 없이 대규모 자본을 조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조달된 자금은 판매·마케팅 투자에 집중해 기존 내부 자본은 전략적 인수(M&A)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미 그램머리는 생산성 스타트업 코다(Coda)를 인수했고, 신임 대표로 코다의 CEO 출신 시시르 메흐로트라를 내세우며 종합 AI 생산성 솔루션으로 서비스 폭을 넓히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 사례는 성장 단계의 테크 기업이 단순히 투자 유치에 의존하기보다는 수익 기반 자본 조달, 전략적 인수, 사업구조 다각화 등을 유기적으로 활용해 경쟁력을 유지하는 최근 트렌드를 보여준다.

경쟁과 협력의 경계에서: 메타, 안두릴, 그리고 국방 기술

한편, 기술 협력의 무게중심이 새로운 축으로 옮겨가고 있다. 안두릴(Anduril)과 메타(Meta)는 최근 미국 군사용 혼합현실(XR) 장치 공동 개발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이 파트너십은 단순한 제품 개발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메타 출신이자 안두릴 공동창업자인 팔머 럭키(Palmer Luckey)가 다시 메타와 손을 잡은 점, 그리고 지난해까지 MS가 주도하던 미군 AR 기기 개발 사업권이 안두릴로 넘어온 과정 등이 서로 얽혀 있다.

군에서 실제 투입될 대규모 섹터의 XR 장치 개발사업은 기본적으로 수십억 달러 규모다. 메타는 리얼리티랩스(Reality Labs)의 AR/VR 연구 성과와 Llama AI 모델을, 안두릴은 전장 지휘 소프트웨어 Lattice를 제공한다. 합작품인 ‘EagleEye’ 장치는 실시간 전장 정보 표시 등 군사 작전의 효율성 극대화에 초점을 맞췄다.

군사 기술 개발 연구소에서 협업하는 엔지니어들과 AR/XR 장치

이 콜라보레이션이 시사하는 건 두 가지다. 첫째, 첨단 소비자 기술 기업이 다시 방위산업과 맞닿고 있다. 둘째, 원래 경쟁적이거나 불편한 관계였던 이들이 거대한 국방 계약을 계기로 공동의 기술·산업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군사용 AR 사업권을 잃은 마이크로소프트도 클라우드 파트너로 남아 군의 주요 IT 인프라에 계속 개입하고 있다. 테크 기업들이 민간과 군, B2B와 B2G 경계 없이 사업 다각화에 나서는 흐름이다.

오픈소스와 로봇 혁신: 허깅페이스의 포지셔닝

한편, 허깅페이스(Hugging Face)는 한때 소프트웨어 중심의 AI 플랫폼 기업이었지만, 최근에는 하드웨어—특히 로봇 분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번에 발표한 HopeJR, Reachy Mini는 모두 오픈소스 로봇이다. HopeJR는 66 자유도를 가진 전신형 로봇이고, Reachy Mini는 책상 위에서 움직이고 소통하는 소형 로봇이다. 각각 3,000달러, 250~300달러로 가격 책정해, 연구자와 개발자 중심의 시장 진입 장벽을 크게 낮춘다는 취지다.

이 회사는 올해 프랑스 폴렌로보틱스(Pollen Robotics)를 인수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모두에 강점을 갖추게 됐다. 이미 2024년부터 오픈 AI 로봇 개발 플랫폼 LeRobot을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있고, 여러 독립 로봇 파트너와 협업해 자율주행, 3D프린팅 로봇팔 같은 분야까지 아우르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의의를 갖는다. 하나는, 로봇 분야의 폐쇄성과 높은 진입 장벽이 오픈소스와 적정 가격 정책으로 해소될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AI 개발 플랫폼에서 쌓인 데이터, 소프트웨어, 커뮤니티의 힘을 실제 하드웨어 혁신으로 연결했다는 사실이다. 기존에는 일부 대기업만 가능했던 로봇 개발이 소규모 팀, 개별 연구자에게까지 열린 장이 창출된 셈이다.

각 매체가 포착하는 관점의 차이와 그 함의

세 가지 사례는 각기 다른 영역에 집중하지만, 기사별 보도 관점에 약간씩 차이가 드러난다. 자본시장과 기업 전략에 초점을 둔 보도는 외형적 거래 구조와 시장 맥락(금리, 실적, 밸류에이션 하락 등)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업계 내부자의 평가, 앞으로의 사업 확장 계획, 그리고 이를 위한 내부 전략자산의 배치에 주시한다.

반면 XR 군사 장비 개발 뉴스는 기술 개발의 파트너십과 인물 스토리, 과거 경쟁 구도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미군 대규모 사업의 변화, 기존 사업권 이동, 업계 전체의 재편 등을 통해 테크 산업의 힘의 이동까지 담아낸다.

로봇과 오픈소스, 하드웨어 혁신 보도는 기술 민주화, 시장 진입장벽의 해소, 기업 간 협업, 개방형 생태계 구축 등 산업 구조의 변동성과 점진적 혁신에 초점을 맞춘다. 이 모두가 결국 테크 산업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구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왜 지금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가: 시장, 정책, 기술이 맞물리는 구간

세 영역 모두, 시장의 유동성 긴축, 금리 인상, 빅테크의 성장 한계, 국가 단위의 기술 투자 및 조달 변화 같은 복합적 요인과 맞닿아 있다. 한때 벤처 자본이 적극적으로 기업 지분에 투자하던 구조가, 기업 밸류에이션 재조정 이후에는 수익을 담보로 한 대체자본으로 옮겨가고 있다. 군 관계 사업도 더 다양한 기업 참여와, 민간의 혁신 기술을 군에 적극적으로 이식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중이다.

오픈소스와 저가 로봇은 대기업 위주의 폐쇄 생태계 해체, 새로운 참여자 등장, 데이터 개방과 협업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흐름을 내포한다. 이로 인해, 테크 기업 내부의 전략 축과 시장 참여의 원리가 이전과는 다르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쟁점

  1. 비지분·수익 기반 대체자본은 테크 기업 재무구조와 기업 생태계에 어떤 장기적 영향력을 행사할지
  2. 빅테크·스타트업의 방위산업 진출이 기술 트렌드, 윤리, 규제 등 다양한 층위에서 어떤 반향을 불러올지
  3. 오픈소스, 저비용 로봇의 확산이 연구·산업계의 경쟁 구도와 개발 환경에 얼마나 큰 변화를 줄지

이러한 변화들은 단순히 특정 기업이나 기술의 성과가 아니라, 산업 전체의 성격과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선수, 관전자, 정책 담당자 모두가 예의주시해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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