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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의 과학, 우리는 어떻게 향기를 기억할까?

냄새의 과학, 우리는 어떻게 향기를 기억할까?

냄새를 맡는 순간,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누군가 옆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면 아마도 진한 향기에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는 오래만에 열어본 서랍에서 어린 시절 사용하던 물건의 향기가 스며나와 잠시 시간을 멈추게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냄새로 인해 특정한 기억이나 감정을 떠올리게 되는 걸까. 이 질문에는 오랜 시간동안 쌓여온 과학적 발견이 숨어 있다.

사람의 코에는 약 4백만 개의 후각 수용체가 있다. 각각의 수용체는 미세하게 다른 분자 구조를 가진 냄새분자를 감지한다. 이 수용체는 냄새분자를 잡아내면 신호를 뇌로 보낸다. 이 과정은 매우 빠르고, 한 번 냄새가 감지되면 그 정보는 곧장 뇌의 깊은 곳, 해마와 편도체로 전달된다. 해마는 기억을 저장하는 역할을, 편도체는 감정 처리의 중심에 있다. 냄새와 기억, 감정이 밀접하게 연결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냄새와 기억의 특별한 연결고리

다른 감각, 예를 들어 소리나 시각보다 냄새가 더 강렬하고 오래 기억되는 데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 후각을 담당하는 신경 회로는 뇌에서 감정을 관장하는 부위와 거의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각이나 청각 신호가 여러 단계를 거쳐 도달하는 것과 달리, 냄새 신호는 가장 먼저 감정과 기억을 처리하는 뇌 부위에 도달한다. 이런 구조 덕분에 우리는 익숙한 냄새를 맡았을 때 강렬한 감정이나 오래된 기억이 불쑥 떠오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예컨대, 누군가는 빵이 구워지는 냄새만 맡아도 어린 시절의 가족 식탁이 떠오른다고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겨울 아침의 차가운 공기에서 옛 스키장 스케이트장 추억을 떠올린다. 이처럼 냄새는 단순한 향기의 차원을 넘어 우리 삶의 한 조각, 즉 ‘감각의 기억’으로 남는다.

노란색 꽃다발을 든 사람이 꽃향기를 맡는 모습

우리의 생활을 바꾸는 냄새의 힘

냄새는 대화 없이도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냄새를 맡으면 배가 고프지 않았던 사람도 식욕을 느끼게 된다. 이런 점을 활용해 마케팅 분야에서는 매장 또는 제품의 브랜드 이미지를 특정 향기로 만드는 ‘향기 마케팅’ 전략을 사용한다. 실제로 미국의 한 호텔 체인에서는 로비에 특유의 향을 사용해 방문객들에게 ‘이곳에 다시 오고 싶다’는 긍정적인 인상을 각인시킨 바 있다.

가정에서도 냄새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깨끗하게 청소된 집에서 은은히 퍼지는 라벤더 향은 긴장을 풀어주고, 반대로 냉장고에서 묵은 냄새가 나면 불쾌감이 들어 청소를 결심하게 만든다. 특정한 냄새는 누군가에겐 위로와 안정감을, 또 다른 누군가에겐 잠깐의 추억 여행을 선사한다.

문화와 전통에 녹아 있는 향기

냄새는 문화와 전통 안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향을 피워 공간을 맑게 하거나, 절이나 제사 때 고운 향을 사용해 차분함을 유도했다. 한방에서는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데 향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왔다. 현대에는 향수가 일상의 일부가 되어 자신만의 분위기나 사적인 공간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한편, 다른 나라에서도 향기는 그들만의 문화적 코드가 담겨 있다.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은 라벤더 향으로 유명하고, 인도는 짙은 잉센스 향을 곳곳에서 맡을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도시를 여행할 때 그 공간만의 특유한 냄새와 향기를 통해 낯섦과 동시에 익숙함을 느끼게 된다.

한적한 산책길을 걷는 사람, 주변에 나무와 풀잎이 많은 풍경

냄새를 더 잘 기억하는 방법

후각 기억력을 유지하거나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다양한 냄새를 경험하고 적극적으로 맡아보는 것이다. 생강, 시트러스, 허브, 나무, 커피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식재료와 자연의 향을 의식적으로 즐겨보는 것도 좋다. 이런 훈련은 미세한 냄새 차이를 느끼게 하고 기억력을 자극한다.

또한, 생생하게 특정 냄새를 기억하려면 그 순간을 의식적으로 인식하는 습관을 들여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책을 읽을 때 커피향을 맡거나, 산책 중에 흙과 풀잎의 내음을 음미하며 ‘이 계절의 냄새’를 마음속에 새겨두는 것이다.

향기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살아가기

사람마다 좋아하는 냄새, 싫어하는 냄새가 다르다. 이는 유전적 차이, 개인적인 경험, 자란 환경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이는 비 오는 날 흙에서 나는 향, 즉 ‘페트리코르’를 특히 좋아한다. 또 다른 이는 휘발유의 냄새에서 색다른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듯 향기를 느끼는 감각에는 정답이 없다. 중요한 것은 나와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마음과, 일상에서 그 순간순간을 감각적으로 음미하는 여유다.

마무리하며

냄새는 말을 하지 않아도 감정과 기억을 전하고,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며, 문화와 역사까지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다. 잠시 눈을 감고 오늘 하루 어떤 냄새들이 스쳐갔는지 떠올려보면 좋겠다. 내일은 한 번쯤 나만의 ‘향기 노트’를 만들어 보며 일상을 새로운 감각으로 저장해 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This post is licensed under CC BY 4.0 by the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