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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경쟁의 세 가지 장면: 소송, 코드, 공동체

기술 경쟁의 세 가지 장면: 소송, 코드, 공동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의 소송, 경쟁, 그리고 그 이면

2025년, 테크놀로지 산업에서 경쟁은 언제나 치열하다. 그러나 이번에 주목할 사건들은 단순히 시장 점유율을 둘러싼 싸움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법적·윤리적 경계와 플랫폼 구조, 기술 철학, 산업 내 신뢰라는 중요한 축들을 드러내고 있다.

HR 테크 스타트업들의 법정 다툼: 정보 탈취와 스파이 논란

미국의 인사관리(‘HR Tech’)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리플링(Rippling)과 딜(Deel)을 중심으로 최근 논란이 격화됐다. 리플링은 딜이 조직적인 방식으로 경쟁사의 내부 정보를 탈취했다고 주장하며, 연방 RICO(조직범죄)법과 영업비밀보호법, 캘리포니아 주법까지 적용해 소송을 걸었다. 소송 대상에는 딜의 CEO 알렉스 부아지즈(Alex Bouaziz), 그 부친, 그리고 COO가 포함됐다.

리플링의 주장은 단순한 기업 비방 수준이 아니다. 자사 직원이 딜의 지시로 스파이 활동을 했다고 법정에서 자백했고, 이 직원은 영업 기회, 제품 개발 계획, 핵심 고객, 우수 인재 정보를 넘겼다는 구체적인 진술을 담았다. 조직적으로 내부자가 경쟁사에 침투해 정보를 수집했다는 혐의는 단순한 산업 스파이 수준을 넘어, 매우 무거운 범죄로 여겨진다.

딜 측은 리플링 소송을 “터무니없다”고 일축한다. 오히려 리플링이 자사에 대해 과장된 주장을 언론에 흘리고 있다며 역소송을 제기했다. 그 내용은 리플링이 딜에 침투하기 위해 자사 고객을 사칭했다는 것이다. 양측은 서로 정보 탈취 의혹을 제기하며, 법정과 여론전을 동시에 벌이고 있다.

이번 사건은 사업 경쟁에서의 불공정 행위, 영업비밀의 보호, 스타트업 생태계 내 신뢰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법적 용어와 형사 범죄 혐의까지 동원된 점은 이 이슈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신호다. 소송에 관여하는 변호사는 전직 검사로, 법정 용어 선정에도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인 사업 분쟁이 아니라, 단체적 조직 범죄 여부까지 법원이 판단해야 할 사안으로 비화됐다.

여기에 또 다른 스타트업 토쿠(Toku) 역시 리퀴파이(LiquiFi)와 딜의 결탁을 문제 삼으며 소송을 진행 중이다. 시장 내 경쟁사의 신뢰가 깨지고, 이윤 추구를 넘어선 “정보전”이 중요한 경쟁 수단이 됐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AI 개발 시장: 자원 배분, 플랫폼 전략, 그리고 파트너 기준

AI 분야에서도 경쟁사의 행보와 업계 내 미묘한 힘겨루기가 포착된다. 엔트로픽(Anthropic)의 과학총괄이자 공동설립자는 최근 윈드서프(Windsurf)에 대한 자사 AI 모델 ‘Claude’의 직접 접근을 차단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윈드서프의 인수설 때문이다. 오픈AI가 30억 달러에 윈드서프를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엔트로픽 측은 자원을 “지속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파트너”에 집중하겠다며 윈드서프 제공을 중단했다. 즉, 장기적으로 경쟁사가 될 수 있는 주체와 직접 협업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 결정의 또 다른 맥락은 클라우드 컴퓨팅 자원의 한정성이다. 엔트로픽은 아마존과의 협업을 바탕으로 컴퓨팅 파워를 점진적으로 확장하고 있지만,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즉시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한정된 자원을 누구에게 우선적으로 제공할 것인지는 비즈니스 전략, 기술 혁신, 신뢰 관리와 직접 연결된다.

또한, 엔트로픽은 단순한 챗봇이 아니라 에이전트형(AI agentic) 코딩 도구 등을 중점 개발하겠다는 입장이다. 챗봇 중심의 경쟁에서 벗어나 좀 더 실질적이고 능동적인 개발 도구로 차별화를 선언했다.

윈드서프 입장에서는 단기간에 서비스 제공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일방적인 차단 이유에 대해 실망을 표했으며, 엔트로픽의 설명에 대해 공식적인 추가 입장을 내지 않았다. 오픈AI 역시 인수설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 플랫폼이 어느 정도 규모에 이르자 협력과 경쟁의 기준을 얼마나 엄격하게, 혹은 유연하게 설정하는지가 업계 내 주요 변수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하는 IT 기업들의 건물 사이로 흐르는 여러 전선과 데이터 라인, 어두운 톤의 도시 풍경

소셜 플랫폼의 실험: 자유와 사용자 주권을 위한 구조

덜 자극적이지만 기술 생태계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사례도 있다. 오픈 소셜웹 프레임워크인 ‘본파이어 소셜(Bonfire Social)’의 공식 발표다. 기존 대형 플랫폼을 벗어나, 사용자가 앱의 기능과 외형을 직접 고르고 조합할 수 있는 ‘모듈형 커뮤니티 소프트웨어’다.

본파이어의 가장 큰 특징은 ‘사용자 주권’이다. 소프트웨어 이용자가 커뮤니티의 규칙, 기능 확장, 운영 방향을 주도하는 구조이며, 이를 ‘플레이버(Flavor)’라는 템플릿 방식으로 실현한다. 각 커뮤니티는 독립적으로 필요한 기능 모듈을 가져다 쓰고, 기본값도 주체적으로 결정한다. 관리자는 특정 확장 기능을 켜거나 끄도록 지정할 수 있고, 심지어 ‘좋아요’, ‘부스트’조차 비활성화할 수 있다.

본파이어는 오픈소스, 비영리, 외부 투자 비수용이라는 태도를 고수한다. 커뮤니티, 연구자들과 협력해 온라인 공간의 다양성과 통제권을 개인과 그룹에게 환원하는 데 목적을 둔다. 실제 기능으로는 피드 커스터마이즈, 다중 프로필, 접근 권한 관리, 원형(‘서클’) 그룹, 중첩형 토론 등 기존 상업 플랫폼에서 볼 수 없었던 실험적 접근이 대거 도입되어 있다.

본파이어는 아예 스스로를 ‘민간 자본과 플랫폼 기업의 통제’가 없는 온라인 공간이라 표현한다. 마스토돈, 피어튜브 등 분산 생태계와 직접 연동하며, 미래에는 ‘호스팅 네트워크’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다른 셋업: 경쟁적 플랫폼, 자율적 생태계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기술기업들 사이의 경쟁 양상이다. 앞서 HR 테크, AI 영역에서 볼 수 있는 ‘선 단위의 경쟁과 대립’이 주로 내부 정보, 핵심 기술, 데이터 자원 확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면, 소셜웹 개발자 커뮤니티는 프로토콜과 오픈소스를 통해 ‘경쟁 없는 공간’을 기획하고자 한다.

딜-리플링 사례처럼, 독점적 가치창출을 위해 철저히 배타적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과는 달리, 본파이어 모델은 개방과 자율성, 참여를 기반으로 한 완전히 다른 가치체계를 실험한다.

시장과 커뮤니티를 잇는 투명성과 신뢰

이번에 다뤄진 사건들은 모두 산업별로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첫째, 기술기업들은 시장 경쟁에서 이윤, 영업비밀, 데이터 접근권, 지적 자산, 그리고 법적 책임이라는 다층의 변수를 두고 경쟁한다. 스타트업이든 거대 AI기업이든, 협력과 경쟁의 경계는 점차 복잡해지고 돌발적으로 이동한다.

반면, 소셜 플랫폼 개발의 새로운 조류는 오히려 기술 활용의 민주성과 투명성, 참여 주체성 회복에 방점을 둔다. 오픈소스 커뮤니티의 토대 위에, 소유와 지배 아닌 협업과 자율성을 구조적으로 설계한다.

결국 시장, 기술, 커뮤니티 각 영역에서는 ‘신뢰’와 ‘투명성’의 적용 방식이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법정 공방을 통해 신뢰의 붕괴를 치르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기술 구조를 개방해 신뢰와 협업을 전제로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움직임도 있다.

IT산업은 혁신과 성장만큼이나, 내부 규범 확립, 산업 내 투명한 관계, 그리고 기술 철학의 재해석이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소송과 자원 배분, 커뮤니티 설계라는 서로 다른 현장 모두에서, 누구의 기준으로, 어떤 규칙과 방식에 따라 신뢰와 투명성이 자리잡을 것인지, 이 질문은 앞으로도 이어질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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