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움직이는 전장과 플랫폼: 기술이 도전하는 경계
유럽 방위 산업의 새로운 투자 물결
최근 유럽 내 방위 기술 기업이 전례 없는 주목을 받고 있다. 단기간에 12억 유로(약 1조 7,000억 원)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뮌헨의 스타트업 헬싱(Helsing)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대규모 데이터를 활용해 AI 기반의 실시간 전장 상황 시각화 솔루션을 개발해왔다. 군은 더 이상 전화나 손그림 지도에 의존하지 않고, 일선 참호와 지휘센터 모두 똑같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변화는 전투 현장의 의사결정 과정을 첨단화하고 군 전체 역량의 효율적 운용에 힘을 보탠다.
헬싱의 최근 투자 라운드는 스포티파이 창업자 다니엘 에크가 주도했다. 에크는 이미 수년 전부터 이 기업에 뛰어들었고, 다른 내로라하는 벤처캐피탈들과 함께 13억 7,000만 유로가 넘는 누적 투자를 이끌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투자 흐름이 유럽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방위 기술 기업 안두릴(Anduril) 또한 수십억 달러를 모았고, 드론 전문기업 퀀텀시스템스와 테케버 역시 1억 유로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며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자체 방위 역량을 강화하려는 유럽의 행보에는 뚜렷한 배경이 존재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미국 안팎에서 ‘전략적 자율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유럽 국가들은 더 이상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는 현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유럽 각국 정부가 국방·안보 분야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흐름의 중심에는 AI, 자동화, 디지털화 등의 첨단 기술이 있다. 여기에는 무장 드론, 초소형 무인 잠수정 등 최신 장비 개발까지 포함된다.
이 흐름을 뒷받침하는 주요 정책적 변화도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24개 동맹국이 공동 출자한 혁신 펀드처럼, 유럽은 단순한 방위비 증액이 아니라 군 관련 산업 생태계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기존에 주요 첨단 무기와 정보기술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지만, 이제 유럽은 자체 기술력 확보, 데이터 주권, 제조 역량 확대 등 다양한 전략을 병행한다. 방위 기술이 단순히 무기 개발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산업, 국제질서에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다.
AI와 온라인 서비스, 통제의 새로운 딜레마
한편, 기술은 사회에 복잡한 파장을 남긴다. 최근 몇 주간 인스타그램에서 계정이 무더기로 정지되는 사태가 이슈로 떠올랐다. 공식 설명 없이 수많은 이용자와 사업체가 갑작스럽게 활동 제한을 당했고, 이 과정에서 AI 기반의 자동화 시스템이 의심받고 있다. 실제로 이용자들은 중대한 정책 위반 없이 계정이 차단되었으며, 정식 이의제기 절차에도 별다른 답변을 듣지 못했다는 사례가 쏟아졌다. 문제는 비단 사생활이나 여가 활동에 한정되지 않는다. 소규모 창업자, 크리에이터, 피트니스 센터 운영자 등 생계와 직접 연결된 이들에게 플랫폼의 AI 결정은 사업 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 고객센터 접근권, 신속한 응대 여부, 계정 정지 사유의 명확성 등이 중요한 이슈로 부상한다. 하지만 대형 플랫폼은 수억 명에 이르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므로, 인간 중심의 검토가 아닌 자동화·AI에 의존하게 된다. 알고리즘의 정확도와 대응 체계가 완벽하지 않은 현실에서, 부정확한 판단 결과로 인한 피해는 개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구조다. 이는 유사 서비스인 핀터레스트에서도 한 차례 반복된 바 있다. 당시 회사는 ‘내부 오류’로 인한 대량 제재임을 인정했으나, 구체적인 원인이나 재발 방지책은 공개하지 않았다.
또한 일부 인스타그램 이용자는 아동 성착취 등 심각한 범죄 혐의로 계정이 정지된 경우도 있다고 호소한다. 이는 무분별한 자동화가 개인의 사회적 평판이나 직업적 기반까지 실질적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환기한다. 이용자는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할 창구가 제한적이며, 메타는 사건 자체에 대한 공식 언급을 공개적으로 내놓지 않은 상태다. 온라인 플랫폼이 사회적 책임과 기술적 한계, 대중적 신뢰 사이에서 어느 선을 지켜야 하는지 고민이 커지고 있다.
플랫폼의 실험과 사용자 경험
AI에 의한 통제와 더불어, 메타의 새로운 실험도 눈에 띈다. 자사의 텍스트 기반 소셜 플랫폼인 스레드(Threads)에서 ‘스포일러 텍스트’ 기능을 도입하고 있다. 이는 민감하거나 결말이 중요한 정보가 미리 노출되지 않도록, 마치 덮개를 씌우듯 텍스트나 이미지를 임의로 가릴 수 있게 하는 기능이다. 이미 디스코드, 레딧 등에서는 기존에 활용되어 왔다.
이 변화는 사용자 경험을 일부 보호하면서도, 문화·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 관한 쾌적한 소통 환경을 구축하는 효과가 있다. 한편에서는 콘텐츠 플랫폼의 커뮤니티 관리와 표현의 자유, 신뢰·책임의 균형 같은 이슈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기술 혁신이 단순한 편의 개선이 아니라, 새로운 이용 규범과 가치관 정립 과정이라는 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기술이 만든 데이터, 사회, 책임의 경계
최근 유럽의 방위산업 투자가 보여주듯 AI와 자동화 기술은 물리적 경계를 넘어선 협력, 경쟁, 자율성의 새로운 틀을 마련한다. 민간에서 시작된 기술이 국가 안보, 경제, 그리고 개인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 범위는 어느 때보다 넓어졌다. 그러나 동시에, 거대 플랫폼의 알고리즘 운용에서 볼 수 있듯 기술은 신뢰의 기반 위에서만 제대로 작동한다. 알고리즘의 판단력이 곧 사람의 운명이나 사업, 사회적 신뢰와 직결될 때, 기술기업과 이용자 모두에게 더 높은 투명성, 피드백, 책임이 요구된다.
이처럼 기술은 더 넓은 가능성을 만들면서도, 예상 밖 위험과 딜레마를 동반한다. 업계와 사회, 정책 담당자들은 기술의 역할과 책임 분배, 피해 회복·예방 시스템까지 한 발 더 깊게 고민할 시점에 와 있다. AI가 바꾼 전장과 온라인 플랫폼, 경계선 위에서 누가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을지, 답은 아직 실험 과정 위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