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의 기로에 선 과학과 인공지능: 핵융합 실험, AI 노동자, 그리고 신뢰의 문제
이슈의 스펙트럼: 첨단과학과 AI의 불완전한 진화
최근 과학과 인공지능 연구 분야에서는 인간의 기대와 현실이 교차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수십 년간 ‘꿈의 에너지’라 불렸던 핵융합 실험이 점진적으로 진전에 도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실제 AI가 일하는 시대가 현실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물에 대한 신뢰나 기술적 한계, 사회적 수용성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세 가지 주요 사례를 중심으로, 지금 이 분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들여다본다.
에너지 혁신의 신호인가, 아직 갈 길 먼 핵융합 실험
미국 에너지부 산하 국립점화시설(NIF)은 최근 세계에서 유일하게 ‘순에너지 양성’ 결과를 거둔 인공핵융합 실험을 통해 학계와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기존 2022년 실험에서는 3.15메가줄의 에너지가 생성되었으나, 이후 반복 실험을 통해 5.2메가줄, 이어 8.6메가줄까지 수확을 높였다. 이는 통제된 핵융합 반응이 실제로 이론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실증하고 있다.
그러나 NIF 실험이 바로 실용적인 에너지 전환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아니다. 첫 ‘에너지 균형 돌파’ 실험조차 시스템 전체를 구동하는 데 소요된 300메가줄에 비하면 생성한 에너지는 극히 일부다. 즉, 레이저로 작은 연료 펠릿에 에너지를 집중시켜 중수소와 삼중수소의 핵융합을 유도하는 과정 자체는 성공적이지만, 이 모두를 전기 생산 등 실사용으로 연결하려면 추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인공핵융합의 다른 방식인 자성(磁性) 축퇴 장치 역시 아직 고비를 넘지 못했다.
학계와 산업계, 그리고 스타트업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이 기술을 현실화하려 노력한다. Xcimer Energy, Focused Energy 등 몇몇 스타트업은 기존 대형 연구소와 다르게 신속한 실험과 상업화에 방점을 둔다. 하지만 극저온, 고출력 레이저, 방출되는 방사선과 플라즈마 관리 등 일련의 물리적·공학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과제로 남아 있다. 에너지 패러다임에 근본적 변화를 예고하는 이 실험이 어느 시점에 상용화로 이어질지 단정할 수 없다.
AI는 일할 수 있을까: 자기주도 AI 노동자 실험
한편, 실리콘밸리의 또 다른 실험실에서는 사람 대신 AI가 실제 ‘직원’으로 채용되는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Firecrawl이라는 스타트업은 최근 ‘AI 에이전트’만 받는 구인 광고를 냈다. 업무는 다양하다. 뇌물도 사지 않고, 피로에 지치지 않는 블로그 콘텐츠 생성, 고객 응대, 코드 작성 등이다. 이력서나 포트폴리오 대신 성능과 자기진화 능력이 평가항목이다.
구체적으로, Firecrawl의 AI 직원 채용 공고에는 한 달에 5,000달러의 급여가 제시됐다. 콘텐츠 생성 에이전트는 실시간으로 독자 반응을 분석해 스스로 주제를 선정하고, 포스팅, 평가, 수정까지 자율적으로 수행한다. 고객지원 에이전트는 입장부터 응답, 이슈 해결, 심지어 인간 상담원에게 업무를 넘기는 앎까지 스스로 판단한다. 개발자 에이전트는 이슈 분류, 문서화, 코드 작성까지 맡는다.
하지만 화려한 광고와 달리, 실제로 이 역할에 딱 들어맞는 AI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Firecrawl의 창업자 역시 “오늘날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인간이 직접 에이전트의 개발·운영·모니터링을 맡으며, AI를 실제 업무에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실험한다. 이 과정에서 AI 개발자와 AI 에이전트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AI ‘운영자’라는 새로운 전문직이 부상할 조짐을 보인다.
AI 에이전트 도입 실험은 Firecrawl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Y Combinator와 TechCrunch의 구인란에는 AI 개발 경험보다는 실질적 에이전트 개발과 운영, 그리고 이의 최적화 능력을 요구하는 기업들이 늘어난다.
연구의 신뢰성과 책임: AI 효과 논문 논란
기술과 사회의 경계에서 또 하나의 논쟁이 불거진다. MIT의 연구진은 AI 도입이 과학 연구 및 혁신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한 논문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된 사건을 공식 발표했다. 해당 논문은 AI 도구가 도입된 연구실에서 새로운 소재 개발과 특허 출원이 늘었지만, 연구자의 일 만족도가 떨어졌다는 주장을 펼쳤다. MIT의 경제학자 다론 아제모글루와 데이비드 오터가 논문을 극찬하기도 했으나, 데이터의 신뢰성과 연구의 진실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내부 검증 결과, 자료 출처와 연구 방식 등 전반적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결론 나면서, 대학은 해당 논문을 모든 공식 경로에서 철회할 것을 요청했다. 논문 저자의 실명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미 프리프린트와 언론에는 이름이 알려진 상황이다. 논문 철회 절차 역시 저자가 아닌 다른 이가 직접 나서야 할만큼 자율성과 책임의 경계가 흐려졌다.
이 사건은 AI 연구 결과의 객관성, 데이터의 재현 가능성, 연구윤리 문제 등 다각도에서 쟁점을 드러낸다. 경제학계를 포함한 이공계 전체에서 논문·데이터 검증의 중요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동시에, AI가 인간의 인식·판단·창의성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공정하고 반복 가능한 방식으로 검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일깨운다.
기술 앞의 현실적 한계와 사회적 고민
세 가지 사례는 표면적으로는 성과와 혁신,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모두 제각각 씁쓸한 한계와 복잡한 문제를 내포한다. 핵융합은 실험적 성공과 실용화의 벽 사이에서, AI 노동자 도입은 실제 효용성과 인간의 일자리, 책임의 문제에 부딪힌다. AI가 과학, 경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조차 그 신뢰성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다.
여전히 중요한 질문 몇 가지는 남는다. 인류는 실제 에너지원이 될 핵융합을 언제,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AI는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인간의 노동방식과 정체성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게 될까? 그리고 AI와 관련한 연구, 실험, 적용에서 신뢰와 검증, 책임의 범위는 어디까지 설정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은 아직 없지만, 각 영역의 실험과 시도, 그에 따른 논쟁과 검증 과정 자체가 오늘날 첨단과학과 기술의 진정한 현재다. 전문가, 연구자, 업계, 그리고 사회 전체가 기술에 대한 건강한 의심과 검증, 균형 잡힌 통찰을 놓지 말아야 한다.